포스트

애통하는 자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세상의 즐거움과 하늘의 애통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8복에서 첫 번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진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으로 ‘애통하는 자’의 복이 등장한다. 이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가르침이다. 오늘날 세상은 애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모든 미디어와 문화는 우리에게 더 큰 즐거움과 더 큰 행복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늘 밝고 유쾌해 보인다.

하지만 기독교는 결코 침울하고 어두운 종교가 아니다. 예수님은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분이셨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울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된 ‘애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애통, 죄의 실상을 마주하다

성경이 말하는 애통은 단순히 세상의 슬픔이나 개인적인 불행에 대한 슬픔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죄에 대한 애통’이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그 실상을 깨닫게 될 때 터져 나오는 깊은 슬픔을 말한다. 밝은 태양이 비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내 얼굴의 작은 흠까지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에서 자신의 죄악 된 존재를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통곡하며 애통하게 된다.


📖 우리 안에 있는 아이히만

닉슨 대통령 시절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가 회심하여 교도소 선교사가 된 찰스 콜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그는 한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예히엘 디누르가 재판정에서 학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마주하는 장면이었다. 디누르는 아이히만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만다.

사람들은 그가 과거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쓰러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디누르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아이히만이 끔찍한 괴물의 모습일 것이라 상상했는데, 막상 마주한 그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디누르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나 자신이 두려웠다. 나는 그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히만과 같은 악의 모습은 특별한 괴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이처럼 우리를 완전히 파괴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슬픔


📖 “바로 당신이라” - 감추어진 죄의 발견

우리는 흔히 죄를 잘 숨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의 진리는 그 반대이다. 죄를 드러내고 고백해야만 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제대로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다윗 왕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전쟁에서 연전연승하며 권력의 최정점에 있을 때, 한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 다윗은 그녀와 동침했고,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보내 죽게 만든다.

이후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 한 비유를 들려준다. 많은 양을 가진 부자가 가난한 자의 유일한 암양 새끼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크게 분노하며 그 부자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소리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죄는 엄격하게 판단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끔찍한 죄는 아주 가볍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향해 외친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 그 순간 다윗은 비로소 자신의 죄의 실체를 보게 되었고,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다. 모든 죄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짓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 애통이 없으면 위로도 없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던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심판자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먼저 직면해야 하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처럼 자신의 죄로 인해 깊이 애통하는 마음이 있을 때, 진정한 영적 부흥이 일어난다. 신앙인에게 가장 큰 은혜가 넘치는 순간은, 자신의 모든 죄가 남김없이 드러나 그리스도 앞에서 용서받는 바로 그 순간이다. 성경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28:13)고 약속한다. 여기서 ‘애통’이라는 단어는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용했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 눈물이 마른 시대, 약속된 위로

우리가 과거의 사람들보다 죄를 덜 짓는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덜 애통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데 익숙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신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만약 우리에게 죄로 인한 거룩한 애통이 없다면, 세상이 주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누가복음 6:21) 우리는 너무나 가볍게, 애통 없이 죄를 대하고 있다.

죄에 대한 깊은 애통, 그리고 그 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하나님의 위로는 오직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다.


📖 오디오로 정리하는 말씀

오디오


💡 말씀 묵상 Q&A

Q1. 예수님이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A1. 세상은 슬픔과 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Q2. 성경에서 말하는 ‘애통’은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슬픔을 의미하는가?
A2. 세상적인 불행이 아닌, 자신의 죄의 끔찍함과 실상을 깨달았을 때 나오는 깊은 슬픔을 의미한다.

Q3. 아우슈비츠 생존자 디누르가 평범하게 생긴 아이히만을 보고 실신한 이유는 무엇인가?
A3. 끔찍한 악을 저지르는 존재가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Q4. 우리는 왜 죄를 숨기기보다 드러내야만 하는가?
A4. 성경은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할 수 없으며,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만이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얻어 진정으로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Q5. 다윗과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A5. 우리 역시 다윗처럼 자신의 죄에는 둔감하고, 다른 사람의 죄는 엄격하게 판단하는 위선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Q6. 나단 선지자가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외쳤을 때 다윗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A6. 그는 비로소 자신의 죄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처절하게 회개하며 애통하게 되었다.

Q7. 신앙인에게 가장 은혜가 넘치는 순간은 언제인가?
A7. 자신의 모든 죄가 남김없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온전한 용서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Q8. 오늘날 우리가 죄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A8. 자신의 죄에 대해 깊이 애통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대신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Q9. 죄에 대해 애통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A9.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Q10. 죄에 대한 애통과 그로 말미암은 위로가 ‘특권’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A10.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퍼할 수 있는 마음 자체가 성령의 역사이며, 그 결과로 주어지는 하늘의 위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믿는 자에게만 허락된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 게시물은 저작권자의 CC BY-NC 4.0 라이센스를 따릅니다.